나의 첫 반결제 산행 및 공승법회...2015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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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 작성일 15-08-25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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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방송에서 연일 태풍을 예고하며 비바람이 몰아칠 것이라는 예보가 계속됐다. 제발 기상청 예보가 틀리기만을 기원할 뿐.
막상 당일이 되자 초복임에도 불구하고 때 이른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어떡하지?” 시작부터 너무 난감한 상황이었다. 공승법회 후 예산 가야사지에서 서산 보원사지까지 9km정도의 길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부처님이 걸으신 고행 길에 비하면 이정도 쯤이야’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산과 우비가 번거롭기도 했지만 일단 모두 ‘같이’ ‘함께’ 출발했다. 어느 정도 걸으니 발에 물도 차고 옷도 젖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드니 비바람을 피하는데 급급해 이 아름다운 산야를 눈앞에서 놓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히 비옷을 벗고 뽀송한 발을 포기했다. 그러자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바로 ‘백제의 미소길’이 비님을 머금은 채 아름답고 푸근한 미소를 띠며 내 눈앞에 펼쳐졌다. 산중턱에 걸린 운무는 웅장했고 그동안 목마름에 고달팠을 산야는 활짝 웃으며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각종 난 개발로 주변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었던 백제 미소길을 이 모습 그대로 9년째 지키고 계신 덕숭총림 수덕사와 서울 옥천암의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반결제 산행을 통해 화두를 참구하며 자아를 완성 중에 있는 청정한 선방스님들과의 조심스런 소통의 귀한 시간을 갖고 더불어 나의 작은 움직임이 아름다운 숲길을 보존하며 자연의 정수인 ‘나’가 자연의 일부로 공생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편으로는 도심에서의 복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하고 의미 깊은 시간이기도 했다. 비록 나의 첫 미소길 걷기는 비와 함께한 번거로운 산행일 수 있지만 목마른 산야를 촉촉이 아니 물씬 적셔 준 고마운 비였기에 나의 번거로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숲길을 걷는 내내 나의 첫 불법(佛法)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채 나는 무작정 옥천암 관세음보살님께 섰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어서 오너라” “많이 힘들었구나”라 하신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관세음보살님과의 인연이 시작됐고,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불과 1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 받은 위로가 지금까지도 내 가슴 깊이 내재화돼 늘 나를 깨우곤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슴을 울리는 스님의 염불과 법문, 도반들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나의 깨달음. 기도로 얻은 나의 보물들이다. 목련존자는 어머니를 위해 오백분의 대중스님들께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어머니의 지옥고를 면하게 했다고 한다. 오늘 나는 내가 받았던 위로와 격려를 청정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림으로써 은혜를 갚고 싶다. 공승법회야말로 정진 수행하시는 선방스님들께 나의 작은 정성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기쁘고 벅찼다.
반결제 산행과 공승법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잠시 생각해 본다. “태풍과 폭우로 온전치 못 할 것이란 어리석은 나의 모습과 오늘의 행사걱정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웅장한 자연의 법음 앞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감사히 여겼다면 분명 오늘의 행사는 성공적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여서 행복했고 함께여서 힘들지 않았다.
저 산 너머 차장 밖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신 부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모두들 수고했다.”


글 | 혜란 구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