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숙경(2008년 5월호) -수덕사 보살계 수계식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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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작성일 08-04-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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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만물이 소생하는 이때, 수덕사 보살계 수계를 받으러 가자고 하여 별생각 없이 꽃놀이 겸 다녀왔다. 고2 때 갑자기 아버님을 여의면서 나와 불가(佛家)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듯한 막막한 현실에서, 뭔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아직은 여리고 꿈 많던 소녀 시절, 아버지를 여읜 슬픔 속에서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지난날들이 새삼스레 생각나는 것은 어찌 된 일일까? 아마도 오늘 수계식을 거행하러 가는 차창 속에서, 그간 부처님의 자비로움에 대한 고마움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야 계를 받는 내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지만 또 한편으론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 아닌지? 그날 이후 우리 3남매를 친정어머니께서 키워 주셨고, 내가 오늘 이렇게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게 된 공덕이 바로 부처님의 따스하고 깊은 마음이라는 것을...., 그러나 절대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지켜봐 주신, 남해 바다 보다 더 넓은 자비의 손길에 의탁하여 여기에 이른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금 부처님의 품 안에서 세속의 탁류를 거슬러 올라 이제부터라도 용맹정진 보살행을 하리라 다짐해본다.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보살행을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산다는 게 뭔지 어리석은 탐욕에 젖어 아등바등 그저 내 잇속을 챙기기에 바쁜데 어찌 거룩한 그분의 가르침을 쉬 따를 수 있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행하기가 이리도 어려운데 굳이 수계식을 하면서까지 지키기도 어려운 계를 어찌 지키겠다고 이러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한편으론 불만이 가득 피어난다...., 하나 앉아서 수계를 하고 일어나서 깨뜨리더라도 계를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말이다. 거룩한 불가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준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자비 덕이라고 깨닫게 된다. 건강한 우리 가족 따뜻한 우리 보금자리 각자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가 하루하루 이렇게 지내는 것 또한 일체중생 제도하시는 부처님 가피 때문이리라.
어찌 더 큰 더 많은 욕심이 없을 수 있을까? 일류대에 다니면 더 좋을 법한 우리 딸, 아직 결론을 말할 수 없지만 좀 더 열심히 해 주면 좋을 고3 아들, 사업한 지 8년이 지났어도 늘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지만 힘들어하는 남편.... 이런 생각들 속에서도 언뜻 스치고 지나가는, 아린 가슴에 뻥 뚫는 듯 행복이 밀려온다. 갑자기 왜일까?
그건 아마도 보련화를 만나러 옥천암에 발걸음을 했기 때문일 게다. 별 생각 없이 찾아간 옥천암, 여느 절과 달리 다소 비좁지만 그러한 곳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보살님들과, 턱 하니 개울가에서 나를 반기시는 관세음보살님을 보는 순간 뭔가에 홀린 기분이다. 그날을 계기로 하여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고 교리 공부며 봉사 활동이며 아직 한없이 부족하지만 부처님의 자비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행복함에 그저 시간이 없더라도 최대한 옥천암으로 향하고 있다.
오늘 이 수계식을 계기로 해탈의 종자를 받고, 그 광명을 바탕으로 내 주위, 조상님 그리고 중생들에게 보살행을 실현 해 나가리라 굳게 다짐해 본다. 내 마음속이 한량없이 기쁘기 시작하고, 그저 하루하루가 복됨을 절감한다.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진심으로 이 복된 자비의 은혜를 나누리라. 그간의 잘못을 참회하고 또 참회하여 전생의 업보를 씻고 대자대비의 품에 안기는 그날까지...
오늘 수덕사의 보살계 수계식은 이 반야원의 깨달음의 날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