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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 [가고 싶은 절] 서울 옥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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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심행 작성일 18-10-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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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절] 서울 옥천암 

- '백불'의 가피력이 신도들의 실천력으로 옮겨가다 -

 

불교신문 2017년 12월 22일자 기사입니다.

  



[가고 싶은 절] <39>서울 옥천암‘백불’의 가피력이 신도들의 실천력으로 옮겨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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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암 전경

옥천암(玉泉庵)은 서울 시내의 흔치 않은 기도도량이다. 1868년 조선의 제26대 임금 고종의 아내였던 명성왕후의 명으로 정관(淨觀)스님이 천일기도를 올리던 터에 세워졌다. 무엇보다 ‘백불(白佛)’ 덕분에 유명해졌다. 온몸에 흰 칠을 한 관세음보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공식 명칭은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으로 보물 제1820호로 지정됐다. 세검정 부근 홍제천 위에 놓인 외딴 절이지만, 옥천암은 백불의 힘으로 장구한 역사를 이어왔다. 소원을 이루고 싶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현 주지 종민(宗敏)스님이 2016년 6월 부임한 이후로는 서울 서대문구의 대표적인 포교도량으로 일취월장하는 중이다.

10미터 높이의 바위에 새겨진 마애보살좌상은 견고하고 웅장하다. 보도각(普渡閣)이 보호하고 있는 백불의 기원은 1000년을 헤아린다.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주 찾아와 자주 기도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고종의 모친도 와서 아들의 건승을 빌었다. 주지 종민스님은 서대문구 안의 유일한 국가지정문화재인 백불을 매개로 지역포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는 백불만큼이나 ‘백불음악회’에도 지역민의 관심과 호응이 쏟아진다.

 

마애보살좌상 영험으로 유명
이제는 서대문구의 포교기지

음악회 장학금 경로잔치로
‘다가가는’ 불교 실천 ‘눈길’

기도프로그램 확대 활성화
불자의 근본인 ‘신심’ 고양

 

백불음악회는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을 일반에 알리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화행사를 통해 이웃과 소통하자는 취지에 마련됐다. 해마다 추석 즈음이면 옥천암 경내는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흥겹다. 관내 어르신들을 초청해 경로잔치와 함께 산사음악회를 열어 지역민과 하나가 되는 자리다. 1부 ‘옥천암과 함께 하는 효잔치에서는 어르신 500여 명을 모셔 신도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을 대접했다. 서대문구청장에게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성금도 전한다. 2부 백불음악회에서는 아름다운 국악 선율이 깊어가는 가을밤을 장식한다. 지난해 클래식 음악을 선보여 큰 성원을 받은 데 이어 올해에는 국악으로 남녀노소를 즐겁게 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나면 대망의 경품추천 시간. 청소기와 안마기 등을 거머쥔 주부와 할머니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하다. 주민들의 환호와 갈채 속에서 불교에 대한 시민들의 호감도 역시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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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불음악회 모습

옥천암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학사업을 통해 불교인재를 후원하고 있다. 옥천암은 매년 중앙승가대와 동국대에 재학 중인 학인 스님을 비롯해 신행활동을 열심히 하는 초중고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800만원을 모아 선물한다. 주지 종민스님은 “미래 한국불교의 주역인 학인 스님들과 청소년들이 학업에 더욱 정진해 지역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한국불교의 귀한 인재가 되라”는 애어섭(愛語攝)으로 이들의 어깨를 다독인다. 아낌없이 베푸는 자비 속에서 옥천암을 찾는 이들은 백불이 내려주던 가피력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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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신촌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점등식

올해 옥천암의 최대 성과는 젊은이들의 거리인 신촌에서 최초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점등식일 것이다. 지난 4월23일 연세대학교 앞 연세로 ‘차 없는 거리’에 불국사 다보탑이 불을 밝혔다. 번화가의 저녁을 바삐 걷던 청춘들은 때 아닌 목탁소리와 음악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서대문구에서 평생 살고 있다던 지역구 국회의원은 “신촌에서 봉축법회가 열린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던 신촌사거리가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날 점등식은 조계종 서대문구주지협의회가 주관했고 그 중심엔 종민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서대문구 사찰 스님들과 옥천암 신도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첫 점등식이 원만하게 회향될 수 있었다”며 “단순히 절 안의 포교를 넘어 지역사회에서의 활발한 전법과 소통이 한국불교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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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주지협의회 장학금 전달

물론 보시의 근본이자 불자의 근본은 신심(信心)이다. 내가 부처임을 확실하게 믿는 마음만이 남들을 부처님처럼 진심으로 섬길 수 있다. 종민스님은 하루 4시간씩 정근하는 관세음보살 42수 다라니기도 등 신행프로그램을 다양화하며 불자들의 신심을 증장하는 일을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세상의 등을 밝히려면 먼저 각자가 내면의 등을 밝혀야 한다”는 지론이다. 홍제천을 건너 옥천암으로 들어가는 다리의 이름은 보도교(普渡橋). 보다 많은 중생을 삶의 고통에서 건진다는 뜻이다. 나와 이웃을 위한 옥천암 불자들의 기도와 실천이 이 다리를 부지런히 오간다.

 

 

인터뷰/ 옥천암 주지 종민스님

“부처님의 말씀 알리려면 먼저 부처님의 마음을 베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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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민스님

동지(冬至, 12월22일 즈음)는 1년 중 하루해의 길이가 가장 짧아지는 날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이날을 ‘작은설’ 또는 ‘아세(亞歲)’라 하여 기렸다. 동지하면 빼놓을 수 없는 풍물이 팥죽이다. 귀신을 쫓고 몸 안의 음하고 삿된 기운을 씻어준다는 음식이다. 동지 무렵이면 종민스님을 비롯한 옥천암 대중은 유난히 바쁘다. 팥죽 대신 팥떡을 준비한다. 신도들과 함께 무려 300세트를 만들어 구청 소방서 경찰서 재래시장 노인정 주민센터를 일일이 돌며 나눠준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108가구를 선정해 찬거리를 선물하는 것도 옥천암에선 낯익은 겨울 풍경이다.

옥천암의 비약적인 성장에는 탄탄한 신도 조직화가 자리하고 있다. 신도들을 ‘홍은’ ‘홍제’ ‘은평’ ‘서대문’ ‘서울 기타’ 등 지역별로 묶어 관리하며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40여 명씩 매주 일요법회에 참석하는 거사회의 활성화도 자랑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면 먼저 부처님의 마음을 베풀어야 한다”며 주지 종민스님이 수시로 신도들에게 진정한 포교의 방향에 관해 일깨운 결과다.

월산스님을 은사로 불국사에서 출가한 종민스님은 30년 가까이 불문(佛門) 안에서 정진했다. 능력과 인덕을 인정받아 종단 중앙에서도 중요한 일꾼으로 활약했다. 서울 약사사 주지, 학교법인 동국대 법인사무처장, 노인요양시설 불국성림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재선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기도 하다. 스님은 “내가 처한 위치에서 언제나 초발심을 지키고 행하려고 노력하겠다”는 자세다.

겨울철을 맞아 당신이 새삼 가슴에 새기는 말이 ‘불조심’이다. ‘우리의 몸은 마른 섶과 같고 성난 마음은 불과 같아서 남을 태우기 전에 먼저 제 몸을 태운다. 한순간의 성난 마음은 능히 착한 마음을 태운다’는 <법구경>의 글귀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불은 마음의 불이라는 점을 일러준다. “‘착하다’의 반대말은 ‘악하다’가 아니라 ‘성내다’입니다. 선함의 종자를 뿌리째 흔들고 짓밟는 것은 분노라고 하는 흉포한 불길입니다. 그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맙니다.” 청정하고 반듯하게 살아온 출가수행자로서의 면모가 오롯이 배어나는 법문이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