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화 국군간호사관학교장(불교신문 1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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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작성일 12-04-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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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열린 박명화 장군 환영법회.





우리나라 군(軍)에서 현직 여성 장군은 법무, 보병, 간호 분야에 총 3명이 있다. 그중 한명이 지난해 12월 말 준장으로 진급한 국군간호사관학교장 박명화(54, 법명 자비장) 장군이다. 지난 2월7일 국군간호사관학교 호국약천사에서 박명화 장군 환영법회가 열렸다. 격의없이 사람들을 대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박명화 장군의 모습은 ‘정다운 이웃집 보살님’ 같은 인상이었다.



  
박명화 장군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보살’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얻은 몸의 병 뿐 아니라 마음 치유도 간호장교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박명화 장군. “고통과 노력없이 성취되는 것은 없다. 꿈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는 박 장군의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자세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명화(朴命花) 준장의 한자명을 직역하자면 ‘생명의 꽃’이다. 생명을 지키는 꽃이 되라는 뜻이었을까. 박 준장은 “간호사관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름 때문인것 같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녀는 교사를 꿈꿨다. 그러다가 간호사관생도가 되면 학비와 숙식이 제공된다는 포스터를 보고 사관생도를 지원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정예간호장교 양성을 목적으로 6ㆍ25전쟁 중인 1951년 설립됐다.


일반 간호대학 교육과정 이외에도 야전간호, 해양간호, 항공간호 등 특수 간호학을 교육한다. 올해는 특히 남성 간호사관생도가 입학해 사회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박 준장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사관생도 시절이었다. 그전에는 교과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유적은 불교로 인해 발전했다’는 정도로 불교를 알고 있었다. 생도시절 매주 종교활동시간에 법당을 찾았다. 수련회에 참석해 3000배를 올리면서 간호장교의 꿈을 키워갔다. 당시 사관학교는 대구에 있었다.


“그때 부처님이 지금 호국약천사 부처님이예요. 오랜만에 약천사 법당 부처님을 뵈니, 신행활동을 소홀히 한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들어요. 이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명화 장군은 간호사관학교가 배출한 여섯 번째 장군이다. 이전 다섯명 장군 가운데 이재순 윤종필 장군이 불자였다. 이재순 장군은 호국약천사 불사를, 윤종필 장군은 경내에 석조 약사불을 조성했다.


“저도 선배 장군님들을 따라 무언가를 해야 되겠죠? 뭐하면 좋을까요?” 경쾌한 웃음을 지으면 질문을 던진다.


박명화 준장은 그동안 교육관련 분야에서 많은 실적을 쌓았다. 임관 이후 국군강릉.대전병원 간호부장, 국방부 건강증진담당,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대장, 육군본부 건강증진과장 등을 역임했다. 풍부한 전문 의료지식과 탁월한 업무 추진력을 바탕으로 장병 건강 증진 활동과 군 의료 발전에 기여해왔다. 군위탁 교육제도를 통해 연세대 간호대학에서 학사학위, 이화여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박 준장은 생도 교육과 더불어 재난간호교육과 국제재난간호 콘퍼런스를 중점 지원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는 각종 재난시 간호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호주, 스웨덴, 미국 등에서 해외연수를 시행한 바 있다. 박 준장은 또 간호리더십을 학문적으로 정립할 계획이다.


“간호장교는 간호사와 장교로서의 역할이 모두 요구됩니다. 군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특성에 맞춰 리더십을 갖춰야 하죠. 또 사단에서 근무하는 간호장교는 병원과 다른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이런 다양한 상황을 아우르는 간호리더십을 정립할 생각이여요.”


인터뷰 중간중간, 늦게 일을 마치고 법당을 찾은 간호장교들이 박명화 장군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눴다. “어머,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 결혼은 했고?” “아직 못했어요. 너무 예쁘니까 데려가는 사람이 없나봐요.”


“이번에 전방으로 간다면서” “네, 실전 경험을 더 쌓고 오겠습니다.”


계급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후배 사관생도들의 등을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는 박 준장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더불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에너지가 박 장군을 통해 주변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듯 했다.



  
군인으로 가장 힘든 점을 묻자 ‘자녀 교육’을 꼽았다. 박 준장은 세 자매를 뒀는데 큰 아이는 중학교 때 전학을 세 번이나 해야 했단다. 남편도 군인이었던 까닭에 막내는 부모님이 키우다시피 했다.

“간호직을 수행하다보면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명확한 생사관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후배 생도들이 가급적이면 종교활동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노력없이 성취되는 것은 없다. 꿈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는 박 준장은 후배 생도들을 향해 “힘든 과정을 인내하며, 자신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몇 번 망설이다 “전역후 무엇을 하실 생각이냐”고 물었다. 취임법회에서 전역 이후를 묻기가 미안했다. 유쾌한 즉답이 돌아왔다. 박명화 장군은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을 할 생각이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가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아요. 그 아이들도 나중에 우리나라를 책임질 아이들입니다. 곧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군에 입대를 시작할 거고요. 그런데 우리사회는 그들을 위한 시스템이 부족합니다.”


박 준장은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의 고교 중퇴율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역 이후 기회가 닿는대로 그들을 위해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BS ‘러브 인 아시아’ 방송 애청자라는 박명화 준장은 “해외 이주여성의 대다수가 동남아시아 불교국가다. 불교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많은 활동을 하기 바란다”며 “많은 사람들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집착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를 행해야 한다)의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느새 시간이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강한 친근감이 느껴지는 박명화 장군이다. 법당을 나서면서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석조약사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부대를 나섰다.
 


■ 박명화 준장은…


사관생도 시절 불교와 인연


제23대 국군간호사관학교장으로 취임한 박명화 준장은 간호사관학교 21기로 1980년 임관했다. 연세대 간호학과, 이화여대 간호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안보국방정책학과 박사과정을 이수중에 있다.


국방부 보건정책팀 국방부 건강증진담당,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대장, 육군본부 건강증진과장 등을 역임했으며, 장병의 건강 증진과 군 의료 발전에 기여해왔다. 지난해 12월29일 장군의 상징인 삼정도를 받았다. 2002년 첫 여성장군인 양승숙 장군에 이어 여섯번째 간호병과 여성장군이다.


사관생도 시절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후 꾸준하게 신행활동을 이어왔으며, 남편 정재두 씨와 슬하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 국군간호사관학교는…


‘몸과 마음’ 치유하는 간호장교 육성


국군간호사관학교는 6.25전쟁 중인 1951년 군의학교 내 간호사관생도 과정을 시작으로 올해 개교 61년을 맞았다. 육.해.공군 정예 간호장교를 양성하는 4년제 특수 목적 대학으로 올해부터 정원의 10%를 남자로 선발하고 있다.


사관생도는 4년간 교육을 통해 전문 간호기술 및 군사교육을 받고 임관하게 된다. 사관학교는 ‘따뜻한 가슴으로 국군 장병의 건강을 지키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간호장교 양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또 재난간호교육센터를 통해 재난간호전문가를 양성하고 국제학술세미나를 주관하는 등 재난간호분야에서 국내 의학발전을 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