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원을 비는 보도각백불 '옥천암 마애좌상'(불교포커스 1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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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작성일 14-03-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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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떠나는 마애불 여행 55



옥천암 마애좌상(玉泉庵 磨崖坐像)은 서대문구 홍은동 옥천암 경내의 거대한 암석에 새겨진 관음보살로 높이 5m의 석불이다. 하얀 불상이 새겨진 바위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보호각인 보도각(普渡閣)을 지어 보호하고 있어서 흔히 ‘보도각백불’ 또는 ‘해수관음(海水觀音)’으로도 불린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이 마애불 앞에서 기원했고, 고종(高宗)의 어머니도 이곳에서 아들을 위해 축원했는데 이때부터 하얗게 칠을 하여 ‘백불’로 불렸다.

  
 

커다란 바위의 평평한 면에 새긴 불상에는 호분(胡粉)과 금분(金粉)이 칠해져 있다. 머리에는 꽃무늬가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썼고, 머리카락은 길게 팔꿈치까지 늘어져 있다. 둥근 얼굴에 눈은 가늘고 입은 작게 표현한 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법의는 양 어깨를 감쌌으며 얇은 옷주름이 신체 전반에 걸쳐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댔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옥천암 마애좌상의 탄생에 얽힌 설화가 재미있다. 조선 명종 때 김수동이란 사내가 중매로 해수라는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시어머니의 구박이 어찌나 심했던지 얼마 후 시댁에서 쫓겨나 결국에는 굶어죽기에 이르렀다. 죽음을 예감한 그녀는 자신의 화병을 식혀줄 수 있도록 물이 흐르는 냇가에 묻어주기를 바랐고, 김수동은 소원대로 그녀를 바위 아래 강바닥에 묻어주었다. 그후 김수동은 그 바위에 자기 부인의 모습을 새겨넣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해수관음의 형상이라 부르며 신성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분 : 서울유형문화재 제17호
시대 : 고려시대
규모 : 높이 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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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8
내비게이션 : 옥천암 마애좌상 / 보도각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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